나의 이야기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나들이

마이동 2019. 10. 11. 18:00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나들이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



2019년 9월 26일 목요일 오전, 집사람과 딸아이와 가을 나들이로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을 찾아보며...  추사 기념관을 즐겁고 유익하게 다녀 갑니다.


















 










 

 




 






 

 

















































 




추사고택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노지실 ( 竹爐之室 )

 


『 차를 끓이는 죽로 ( 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 ) 가 있는 방 』

이란 뜻으로 추사가 친구인 황상( 黃裳 ) 에게 써준 다실(茶室) 이름이다.



예서(隸書).


전서의 형을 살리어 그림을 피하는 듯하여 지나치게 교(巧)를 부린 작품이다.

추사의 글씨를 평하여 일반적으로 졸(拙)한 것이 그의 특징이라고 모는 사람도 있으나,  실은 추사의 글씨는 교(巧)하지

않은 것이 거의없다.


다만, 그의 교(巧)는 이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교(精巧)에 속하는 것이 아니요,

불균형적(不均衡的)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교(巧)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예외가 될 것이다.

(호암미술관 소장)

 

 











석년(石年)

 

사랑채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 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刻字)한 것이다.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는 1844년 완당 나이 59세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이다 . (개인소장)






































 



무량수 (無量壽)

 

「 한 없는 수명 」 이란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에 입각하여 쓴 글이다.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삼세(三世) 고금을 통하여 한이 없기 때문에 무량수라 하였다.

왼쪽의 승련노인(勝蓮老人)은 추사선생의 호(號)이다.

 

 










 

 




 

만수무강 (萬壽無疆)

 

건강과 장수를 빌 때 쓰는 말로써, 「 한없이 목숨이 긺 」을 나타내는 뜻이다.



예서(隸書)


오른쪽의 소연정지(小연正之)는 추사선생의 호(號)이다.


이글씨는 누구에게, 언제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도 유배 생활과 관직을 떠나 71세 때

경기도 과천 봉은사(奉恩寺)에 기거하고 계실 때, 「 大烹豆腐瓜薑菜 (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 (고회부처아녀손) 」이란 글씨를 행농(杏農) 유기환(兪麒煥)에게 선물할 즈음

다른 친구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묘

 


1937년에 초배(初配)인 한산이씨 묘에 추사묘와 계배(繼配)인 예안이씨 묘를 이장하여 3위를 합장하였다.

망부석 1쌍이 있고, 묘비는 그 해 9월에 세웠는데, 종인(宗人) 김승렬( 金承烈)이 짓고 섰다.

 
















































추사 김정희


시ㆍ서ㆍ화에 능했던 천부적 학자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외척 세도 정치기에 활동한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같은 존재이다.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진경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 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다.

추사 선생님은 서예가이자 시와 문장의 대가였고 경학, 고증학, 금석학, 선학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추사는 청나라 학예인들과 교류하면서 그의 학문과 예술이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 받은 국제적인 학자요 예술가였다.






















 추사기념관

 

 

추사 기념관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하여 추사 선생의 다양한 면모와 그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되었다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을

가족들과 즐겁게 찾아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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