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순교성지
친구님과 찾았던 수원순교성지를 다시 한번 회상하며
달빛순례 2코스와 달빛순례 3코스를 옮겨....
다음엔 꼭 이 순례코스를 걸으며 담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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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지 달빛순례, 가정의 달인 5월의 첫 금요일에는 제2코스 수원화성의 북서쪽을 순례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참석자가 별로 없을 거라는 우려와 달리, 시작시간인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어느새 참여 신자가 30명이 넘었다. 순례객들은 오늘도 성모자상 앞에서 촛불을 들고 성지전담 나경환(시몬) 신부의 수원화성과 성지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들었다. 바로 이곳 ‘북수동성당’이 자리한 곳이 옛날 8부자 터. 정조대왕은 화성을 만들면서 전국8도에서 부자 한 집씩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바로 이곳이 그 터로, 보시동(두루베푸는 동네라는 뜻으로 북수동의 옛지명이다)이었다한다. 나경환 신부의 인솔하에 순례객들은 ‘고통의 신비’를 바치며, 지금은 골목길인 수원화성의 옛대로를 따라 장안문을 향해 걸었다. 골목길이 끝날 무렵 화려한 장안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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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옹성 안에서 나신부의 설명은 이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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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객들은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다시 성곽으로 올라 포를 설치했던 북서적대를 지나 북서포루에 이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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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신부는 화성 건설 당시 정조의 선정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성곽 건설을 위해 이주민들에게는 3배의 금액을 보상하고, 주민들을 위해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또한 정조는 어릴 적 서학(오늘의 성경)을 세 번이나 읽었다 전해지는데, 나 신부는 그의 개혁정치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바로 거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성성곽은 일정크기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를 1타라고 하며 이 1타 안에는 외부를 살피고 활을 쏘는 등 공격을 할 수 있는 3개의 구멍이 있다. 이를 3구 1타라하는데 이는 삼위일체 신앙과 연결 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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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만의 독특한 설비로 망루와 적을 공격하는 역할을 했던 서북공심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순례객들은 화서문에 다다랐다. 화서문은 성 안 사형터와 가까워 순교자들의 시신들이 통과한 문으로 시구문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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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문에서 다시 옛길을 따라 가면 지금은 어느 개신교회인 ‘수원 유수부 사형터’에 이른다. 바로 여기가 박해 때 수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당했던 곳이다. 다시 촛불을 켜들고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를 바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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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가 아버지 정조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인 화령전을 지나 이아 터에 이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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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효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어주기도 했던 화성행궁에 도착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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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행궁 앞 행궁광장은 최근에 간이형옥이 있던 곳으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전한다. 간이 형옥은 화성행궁에서 심문받았던 양반출신 순교자들을 가두었던 곳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제공하고 처형하였던 순교 현장이라 한다.
일행은 다시 촛불을 켜고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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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순교자 현양비 앞에서 나경환 신부의 설명을 다시 들었다. 이 순교비는 짓밟힌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기차선로 침목으로 만들어졌으며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침목이 신앙이 커가는 형상으로 조성되었다. 디귿자 형태로 되어 화성의 치성을 의미하고 빵의 기적을 상징하는 5개의 화성 봉화대형태의 석조물로 구성 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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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지에서는 해마다 순교자현양대회를 여는데 올해는 9월 순교자들의 넋이 서려있는 화성행궁광장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수원교구의 많은 신자들이 참여 하여 은총을 받기를 바란다고 나 신부는 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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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현 명예기자 (수원교구 인터넷신문)
날짜 순례지 준비물 3, 6, 9, 12월 첫금요일 3코스 (화성남동쪽) 큰초, 묵주, 마실물,구수원성당 복원기원 및 성역화기도 수원성지 달빛순례, 6월의 첫 금요일에는 마지막 순환코스인 제3코스로 수원화성의 동남쪽을 순례했다. 종로사거리에 위치한 종각은 정조 임금이 수원을 고향이라 여겨 고향사람이라는 의미로 ‘여민각’이라 했다고 한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던 정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종로사거리는 다산 정약용이 십자로라 칭해 다산의 십자가사상을 드러낸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토포청 앞 사거리로 통행이 많던 곳이라 박해 때 종을 쳐 사람들을 모은 후 천주교인들을 참수했던 순교지였으며, 이날 모인 순례객들은 순교자들을 위해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옛길을 따라 형옥이 있던 곳에 이른다. 둥근 담으로 둘러져 있던 형옥은 평민순교자들을 가두었던 곳이며, 많은 순교자들이 굶겨 죽이는 ‘아사형’으로 목숨을 잃었던 곳이었다. 지금도 이곳은 ‘옥거리’라 불린다. 다시 기도를 드리고 순례객들이 향한 곳은 화성의 남쪽 대문인 ‘팔달문’이다. 전쟁 중에도 파괴되지 않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팔달문은 옛날 북쪽 대문인 장안문과 더불어 시장터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종을 치며 성문을 열고 천주교인들을 끌어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팔달문 밖 장터에서 순교자들을 장살형으로 처형하였던 곳이었다.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다음 순례지는 남암문터. 수원화성에는 양반들이 드나들던 4개의 대문과 상인 천민 평민들이 드나들던 5개의 암문이 있었다. 현재는 남암문을 제외한 4개의 암문이 남아 있다. 남암문은 화서문과 함께 시구문이라 불리는데 아사형으로 순교한 시신을 내가던 곳이었으며, 또한 암문에는 순교자들의 목을 메달기도 했다고 한다. 남공심돈터와 유천(버드나무 내)을 지나 다다른 동남각루는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나온 곳이다 동남각루의 벽은 위로 열리게 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목이 잘린 순교자들의 시신을 성밖으로 던졌다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천주교인들이 순교했던 터에 자리 잡은 용주사 포교당터(현재 수원사)에서 기도를 드리고 매향다리에 이른다 매향다리는 매화나무가 많았던 곳으로 화성 봄풍경 8경중의 하나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인데 다리 옆에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 한다. 다시 종로 사거리를 지나 수원성지 순교자현양비 앞으로 돌아온 순례객들에게 전대사 은혜를 내려 주시길 기도하며 수원 성지 달빛순례는 첫째 금요일에 다시 제1코스부터 순례가 시작 된다.
여민각
행궁광장
신풍루
화성행궁의 정문이며,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
수원화성
친구님과 둘러본 수원화성입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blog.daum.net/dong2013/8927056
보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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