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8일 목요일 아침, 아침 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이른
시간에 '무주덕유산리조트'를 떠나며... 매형님과 누님, 그리고 제
집사람과 함께, 무주 '적상산 전망대' 와 '적상산사고지유구' 그리고
'안국사' 를 잠시 관람, 적상호를 바라보고, 적상산을 내려오다...
잠시 들려본 무주 '머루와인 동굴' 을 담았습니다.
적상산 전망대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 119-8
적상산 전망대. 사진제공|무주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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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은 ‘붉은 치마’를 뜻하는 적상(赤裳)이다.
단풍이란 계절적 비유를 갖다 붙여도 좋지만 원래는 불그스름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모양새에서 따왔다.
그 자태를 한눈에 보고자 하면 전망대가 필수다.
이 전망대는 발전소의 조압수조를 개조해 만들어 전망대치고는 거대하다.
발전소는 이름도 특이한 무주양수발전소다.
물을 끌어올려 발전한다는 뜻이다. 저수지도 양수기도 필요한 발전소인 셈이다.
이 전망대에 오르면 덕유산 능선을 바라볼 수 있고, 짙은 단풍이 내려앉은 해발 850m의
산 중턱에 있는 발전소의 상부 댐인 적상호의 조망도 가능하다.
360도 전망은 가슴속을 탁 트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전망대는 차로 갈 수 있는데, 적상산 허리를 굽이도는 고갯길은 단풍철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적상산 전망대" 가는 길. 사진제공|무주군청
무주는 구천동이다. 대세 여행지는 오히려 무주의 맛을 식상하게 만든다.
이 구절양장의 33경은 무주를 향한 여행객의 진입장벽을 낮췄지만, 끝내 구천동 밖의
풍경은 순삭 시켰다
"적상산"의 깊어진 가을. 사진제공|무주군청
구천동의 유혹을 뿌리치면 무주의 미혹을 마주할 수 있다.
눈호강 풍광이란 킬링 포인트를 내려놓으면 잊혔던 이야기가 다시 샘솟고 발길을 잡는
여운이 힐링 포인트로 부활한다.
무주공산을 꽉 채울 비방은 멀리 있지 않다.
"적상산 전망대" 드론 샷. 사진제공|트래블팀
무주 양수발전소 "조압수조" (현재 '적상산 전망대'로 이용)
적상산사고지유구(赤裳山史庫址遺構)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960
(지번) 적상면 북창리 산 117-5
063-320-2542
무주 적상산 전망대서 바라본 덕유산 향적봉 (사진=김무종 기자)
전라북도 무주에 있는 "적상산 사고(赤裳山 史庫)"
사고(史庫)는 실록 등 중요 문서를 저장하는 곳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국가기록원
같은 역할. 지금이야 책을 수없이 찍어내고 디지털로도 저장해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지만 당시 귀하디 귀한 게 책이었다.
그것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니 얼마나 귀했을까.
임란 때 이 사고들이 다 불타 버리고 전주사고가 남았다.
이에 사고는 재난으로부터 덜 영향을 받을 산을 새로운 입지로 찾게 된다.
적상산 사고는 묘향산에서 옮겨 온 것이다.
묘향산 입지도 당시 후금이 세를 얻으면서 위협적이라 판단해서다.
당시 무주의 적상산 외 강화의 정족산, 봉화의 태백산, 평창의 오대산에 사고가 있었다.
적상산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요새와 같은 형세로 그동안 최영 장군 등 여러
인물들이 사고의 최적지를 주장해 온 터였다.
출처 : 서울파이낸스(http://www.seoulfn.com)
"적상산 사고"와 '적상호'. 사진제공|무주군청
말씀은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님 말씀이나
친구들의 조언이라고 하찮게 버릴 수는 없다.
무주에는 말씀의 기록이 있다.
이곳의 '적상산 사고'는 조선 왕조의 왕들이 내뱉은 말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왕이라도 쉽게 열어 볼 수 없는, 내뱉은 그것들은 고스란히 역사로 남았다.
대개 사화의 출발이 왕이란 자가 그것을 훔쳐보고, 보복하면서 벌어진 일이니
어찌 보면 판도라의 상자일 수 있다.
하지만 저 기록이 분노 조절 장애자의 분풀이용으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적상산 사고" 드론 샷. 사진제공|트래블팀
대부분은 치세의 잣대가 됐고 난세의 약방문이 됐다.
그래서 그 보존에 사관은 물론 백성과 승병의 분투가 끊이지 않았다.
소실과 산실의 걱정에 이곳저곳에 이치 됐고, 망실분은 다시 필사해 역사의
구멍을 메웠다.
그리하여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유산이 여태껏 우리 삶의 좌표가 됐고
국가 존망의 백년지대계가 됐다.
"적상산 사고" 내부 전시공간. 사진|강석봉 기자
"적상산 사고"는 강화 정족산 전등사, 평창 오대산 월정사, 봉화 태백산 각화사
등에 설치됐던 사고와 함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다.
원래 묘향산 사고에 있던 실록을 광해군 6년(1614)에 적상산(해발 1034m)으로
옮겨왔다.
인조 19년(1641)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소장한 선원전을 세워
사고의 온전한 모습도 갖췄다.
아쉽게도 일제 강점기 폐지됐고 실록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적상산 사고"의 전시물 중 조선왕실의 족보인 선원록. 사진|강석봉 기자
원래 적상산 사고가 있던 곳은 적상호 물아래였다.
1990년대 무주양수발전소 상부 댐이 들어서면서 '사고 터'는 수몰됐고
현재 위치에 선원전과 실록전 건물을 복원했다.
지금은 '사고' 라기보다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해설사가 실록전 앞에서 무주 적상산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무종 기자)
적상산 사고에 들어서면 오른쪽엔 실록전이, 왼쪽에 선원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고가 있으니 이전에 전주까지만 오던 인사들이 사고가 있는 무주도 들리게 되고
무주는 중요 도시로 거듭난다.
당시 무주 도호부로 인근 지역까지 관할하는 큰 역할을 맡게 된다.
사고는 적상산 자락에 있어 인근 적상산 전망대를 빼놓으면 덕유산 산세를 보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등산도 아니고 케이블카도 아니고 그냥 차로 잠시 이동하면
전망대 코앞까지 간다. 발품 덜 들이고 가성비로는 1000미터 이상의 적상산과
덕유산 등 산세를 구경하기에 최적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덕유산의 향적봉(1614m)을 비롯해 우측에 망봉과 불영봉(무룡산),
좌측에 칠봉, 거칠봉 등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적상산의 ‘적상’(赤裳, 여인이 붉은 치마를 곱게 입은 것 같다는)의 단풍이 들어
더욱 가을을 본다.
출처 : 서울파이낸스(http://www.seoulfn.com)
안국사(安國寺
(지번) 적상면 괴목리 1602-1
063-322-6162
안국사(安國寺)는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934번지 적상산(赤裳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무주읍 남쪽에 우뚝 솟아 있는 적상산은 특유의 붉은색 퇴적암이 높이 400m의
절벽으로 산의 중턱을 감싸듯이 노출되어 있어 마치 붉은 치마를 두른 것과 같다
하여 산 이름을 적상이라고 했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욱더 그 이름을 실감하게 된다.
적상산은 산 정상이 넓은 분지로 되어 있어 평탄하고 물이 풍부하며 산 허리가
절벽이라 천연의 요새지인 셈이다. 산내에는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이 있다.
북창리 입구에서 15㎞ 지점에 있는 안국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창(西倉)이나
북창(北倉)에서 한 시간 이상 좁고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 1987년에 원광대학교에서 안국사를 발굴할 당시에도 길이 좁아 발굴에 필요한
리어카 등을 모두 짊어지고 올라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절 앞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찾는 길이 쉬워졌다.
본래의 안국사는 1989년부터 진행된 무주 양수발전소의 댐 공사로 인하여 수몰지구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1991년부터 남쪽 약 1㎞ 지점의 현재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현재의 안국사 자리는 1949년에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던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무주읍지인 『적성지(赤城誌)』의 「적상산안국사기(赤裳山安國寺記)」에 의하면 안국사는
고려시대인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 스님이 창건했고, 그 뒤 조선 초기에 이르러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곧 조선 태조 이성계가 국가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무학 스님에게 명하여 복지(卜地)인
적상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짓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고려 말인 1374년에 최영(崔瑩)
장군이 천연의 요새인 이곳에 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뜻밖의 난리에 대비하도록 조정에
요청하여 성을 쌓은 사실이 있어 그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이후 조선 중기까지 줄곧 절이 유지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자연경관이 뛰어나 일찍부터 불교 수행지로서 주목을 받았을 것은 틀림없다.
한편 1864년에 만든 <안국사 중수기> 현판을 보면 옛 풍수가들의 건의에 따라 산성을 쌓고
성을 지킬 스님을 모집하여 그들의 거처로 이 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곳이 무주 덕유산 향적봉입니다.
적상호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930
무주 양수발전소 상부댐으로 372만 톤의 물을 저장한다.
머루와인동굴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359
(지번) 적상면 북창리 산 119-5
063-322-4720

적상산의 아름다운 그곳, 적상산 중턱 450m 무주 머루와인동굴
기원(Origin)
무주 머루와인동굴은 무주 수양 발전소 건설 (88.04~95.05/7년) 시 굴착 작업용
터널로 사용하던 곳으로 머루 재배 농가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주고자 무주군에서
2007년 임대, 리모델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할(Role)
산머루 재배 농가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 내방객에게 감동 선사. 관광.
무주 '머루와인 동굴' 을 끝으로 무주 여행을 마무리 지으며...
언제나 건강과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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