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봉평 '이효석 생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681
033- 330- 2700
2019년 7월1일 월요일 이른아침, 부천시에서 친구님들과 출발
고속도로를 달려 경기 광주역에서 친구를 만나 함께 4인방 친구들이 7월의 여행을
신나게 강원도 평창으로 출발하며... 양평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여갑니다.
봉평 '이효석 생가'
주소(住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남안리 681번지(이효석 생가터)
가족
부 - 이시후
모 - 강홍경 사이에서
장남 - 이효석 출생(출생일 : 1907년 2월 23일)
결혼 1931년 7월 결혼(25세)
처 - 이경원(함북 경성 출신으로 나진고등여학교 출신임)
장녀 - 1932년 나미출생(생존)
차녀 - 1935년 유미출생(생존)
장남 - 1937년 우현출생(도미)
차남 - 1940년 영주출생(별세)
출생과 유년시절(出生, 幼年時節)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본마을 창동리 서남쪽에 있는 성황당을 지나 봉평마을 건너 쭉 빠진 협곡의 마을인데 효석의 생가는이 마을의 중간쯤 되는 우경산밑 이다. 뒷산은 둥그스럼하게 치달린 산으로서 산세가 우악하게 생겨 주변경관을 맑게 한다.
이 산 좌편으로 폭 약80m, 길이 약 900m로 흘러내린 경사진 밭이 완만하게 놓여있다. 생가 앞으로는 작은 들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옥한 전답이 펼쳐져 있다. 생가 뒷편 언덕에 는 밤나무 몇그루, 돌배나무 한그루 등이 큰나무로 서 있고 앞마당에는 물푸레나무와 단풍나무가 각 한그루씩 서 있다.
생가 중심으로 우편에 사립문이 있어 마을로 나아가는 길이 있고, 앞마당을 지나 좌편 측면으로 돌아가면 우물이 있다. 말하자면 이생가는 전형적인 산촌의 반가라 할 수 있어서 운치가 잘 어울린 집이다. 이 집에서 효석은 산촌의 자연을 뼈마디에 새기며 8세에 이르렀다.
1914년 8세때 외학을 하게되어 봉평에서 100리가 떨어진 군 소재지 평창공립보통학교 (현 평창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평창에서는 하숙을 하였는데 봉평집에 다니곤 했다. 이때의 교통수단은 우마차 아니면 도보가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효석은 봉평과 평창 사이 100리를 거의 걸어서 다녔다. 그래서 그 길은 자연 집에서 나와 남안리 마을을 거쳐 봉평천(흥정천)에 다다르고 여기에서는 좌편 강변에 있는 동리 물레방아를 만나게 되고 그 다음은 봉평천 징검다리를 건너 봉평의 성황당을 지나면서 봉평의 본 마을 창동리에 들어와 상가와 주점, 즉 봉평장터 걸리를 뚫고 시내를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중 충주집(훗날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점)이란 주점도 지나왔었다.
봉평시내를 빠져나와서는 장평까지 20리, 노루목고개('메밀꽃 필 무렵' 작품 속에 나오는 고개)를 넘게 되면 장평의 개울(동작품속에 나오는 개울)에 이르며 이 개울을 건너서는 장평 삼거리 (한길은 봉평으로 가는길, 한길은 강릉, 하길은 평창길)에 닿게되고 장평에서 대화까지는 30리, 하장평, 재산, 재재(고개이름)를 넘어 신리, 상대화리, 대화로 이어진다.
대화면의 대화거리는 곧 대화장터인데 이 거리도 효석이 걸어다녔던 길목이 된다. 대화에서 평창까지는 40리, 다시 이 길을 거쳐 평창 하숙집에 오게 된다. 6년 동안 효석은 이 100리 길을 왕래하였는데 그렇다며 효석은 이 길을 몇 번이나 걸어서 내왕했겠는가는 그 자신도 모르리라. 효석은 이 100리 길 속에서 자연을 배웠다. 봄에는 꽃피는 동산구비를, 여름에는 들판에 깔린 오곡의 청파, 뜨거운 햇빛, 소나기, 숲의 청산들을 바라보며 가을은 자즈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밭을 지나면서 멀리 물들어가는 단풍산의 원경에 취하고 낙엽도 밟게 되며 겨울은 산촌에 내리는 눈을맞이하였고 산악 지대의 설경에 파묻혀 살았다. 절기마다 다른 분위기와 변화해가는 자연의 순환을 맛보게 되었다. 또 절기마다 하늘과 구름의 색깔이 다르게 변하였고, 바람결 또한 그렇게 변하며 불던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며 유년시절을 지내왔던 것이다.
후에 그의 작품속에 나오는 자연의 숨소리가 싱그러 운 것은 이 유년시절에 체험하고 몸에 밴 소질에서 풀어져 나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효석은 외학을 하면서도 우등생으로 평창공립보통학교 6년간 과정을 전부 마쳤던 것이다. 여기까지를 유년기로 정의한다. 다시 청운을 싣고 경성으로 1920년(14세)에 효석은 청운의 꿈을 가슴에 싣고 더 먼 외학의 길을 경성으로 오른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현민 유진오를 만나게 된다. 처음은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아 곧 수송동 하숙으로 옮기고 그야말로 타관살이가 제대로 시작되었고 또 본격적인 공부생활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28년『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노령근해』, 『상륙』, 『행진곡』, 『기우(奇遇)』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자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 후 모더니즘 문학단체인《구인회》에 참여하였고『돈(豚)』,『산』,『들』등을 발표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시적인 문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작품집으로는 『노령근해』(1931년), 『성화』(1939년), 『해바라기』(1939년), 『이효석단편선』(1941년),
『황제』(1943년) 등이 있고, 장편으로는『화분』(1939년),『벽공무한』(1941년)이 있다.
메밀꽃필무렵 식당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682
033- 330- 2700
메밀묵밥으로 점심으로 맜있게 먹고..
멋지고 재밌게 지여져 있는 이식당을 그냥 담았습니다.
모처럼 4인방 친구님들과 즐겁게
평창 봉평 '가산 이효석생가' 를 즐겁게 다녀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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