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남

'화순옹주 정려문' 과 '백송공원'

마이동 2019. 5. 16. 17:00






화순옹주 정려문(和順翁主 旌閭門)과

백송(白松)공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



 '화순옹주 정려문' 과 천연기념물

 제106호 예산의 백송(白松)을 만나... ??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오후, 친구들과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과

기념관을 보고, 100 여m 떨어져 있는 '화순옹주 정려문' 과 '백송공원'을 찾았습니다.



















 
























화순옹주 정려문(和順翁主 旌閭門)

 


 

정려문(旌閭門)은 추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貞節)을 기리고자 정조가 명정(命旌)한

열녀문(烈女門)이다.


화순옹주는 부군 월성위 김한신(1720~1758)이 39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하자, 그때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군을 따르고 말았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정문(烈女旌門)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명정(命旌)하였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화순옹주 정려문' 주위의 조성된

'백송공원'을 친구들과 조용히 돌아 봅니다.

 
















 


 

 

 

 

 

 

 

 

 

 

 

 

 

 

 

 

 

 

 

 

 


 







































 

 

 






























































 

 

 

 

 

 

 























































































예산의 백송 (천연기념물 제 106호)

 

백송(白松)은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이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때,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생부 김노경(金魯敬)을 따라 청나라 연경

( 지금의 북경)에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씨를 고조부 김흥경(金興慶)의 묘소 앞에 심은 것이다.

 

원래 밑에서부터 세 가지로 갈린 수형이였는데, 두 가지는 고사(枯死)하였고, 현재는 한 가지만 남아 있다.

수령(樹齡)은 약 200년이며, 수고(樹高)는 약 10m 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예산의 '백송' 은 많은 노력에도...  2012년 6월23일 아주심한 가뭄으로

한참 예산 '백송' 을 보호하는 작업이 한창일때 본것이 저에게 마지막 였던것 같습니다. 




 




 

 


 

 

 









 

 





 

 

 

 

 

 

 

 

 









이제 산림연구기관에서 '백송' 의

 씨앗을 발아시켜 이렇게 크게자라 심어 놓았습니다.

 



























친구들과 예산 '화순옹주 정려문' 과

 튼튾하게 자라고 있는'백송공원' 을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