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시 '부석사' (浮石寺)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면 북지리 157 (지번)054-633-3464
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오후, 정다운 친구들과 빗줄기 속을 달려서 영주 부석사에 도착하여 조용히 관람하고 갑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에게 전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법복(法服)과 집기(什器) 등을 넣은 상자를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
버렸으므로, 급히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비가오는 '봉황산 부석사' 를 우산을 쓰고
정다운 친구들과 관람하는데 ... 비가와서 사진이 없다 시피합니다.
‘鳳凰山浮石寺'(봉황산부석사)
범종루는 사찰의 중문(中門)에 해당하며, 본전을 향하는 입구 쪽에서는 팔작지붕을 하고 반대방향은
맞배지붕이므로 일반 사찰건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서, 누각에는 ‘鳳凰山浮石寺(봉황산부석사)’라는 편액이 있을 뿐 범종은 없다.
무량수전 앞에 안양루를 오르는 석단이 2단으로 조성되었으므로,
대석단과 합하여 상·중·하의 셋으로 보는 가람 경영방법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불전, 고려시대, 국보 제18호.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며, 기둥의 알맞은 배흘림,
간결한 두공과 우주에 보이는 귀솟음 수법이 돋보인다. 앞 마당에는 국보 제17호인 석등이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를 정다운 친구들과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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