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3일 목요일 오후, 미국 시카고에서 오신 누님과 매형님을 모시고...
강원도 철원 소이산 모노레일 '철원역 '과 '노동청사' 와 '백마고지' 등을 즐겁게
관람하고 갑니다.
소이산모노레일 철원역
강원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368
0507-1339-0362

철원의 "소이산" 모노레일 사전 예매 와 또한 시간 관계상 탐방할 수 없기에....
친구들과 다녀온 '소이산' 경관을 올립니다.
소이산(所伊山)
강원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소이산 평화마루공원 정문앞 입니다.
소이산(所伊山) 전망대 (362.3m)
철원 평야를 관망할수 있는 362.3m 의 야산 같지만, 미군이 적군의 동태를
살필수 있는 중요 군사기지로 많은 지뢰가 묻쳐있는 현 실정으로...
위험한 지역은 무단 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위 10개의 사진은 해설을 돕기위해 다른 블로그에서 정중히 모셔 왔습니다.
< 단 내리라는 말씀이 계시면 즉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원도 철원 "소이산" 정상 모노레일 매표가 마감되여... 철원역 광장을
둘러보며, 철원 "노동청사" 로 향합니다.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 반격북진작전전 시기까지 북한의 철원, 김화, 평강,
포천지역을 관장한 철원군 당사가 있었던 곳
철원 노동당사는 수복되기 이전인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 주민들의
노력동원과 모금에 의해 지어진 지상 3층 건물로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당시 주민들은‘성금’이라는 명목으로 1개 리마다 쌀 200가마씩의 자금과
인력 또는 장비를 제공했다.
내부 구조물 축조 사업에는 보안을 위해 열성당원 이외의 일반인은 작업에
동원되지 않았다.
이 당사에서는 1947년 초부터 중앙으로부터 지령되는 극비사업과 철원 인근
주민들의 동향 시찰, 중부지역의 대남공작 등을 주요 업무로 하였다.
북한의 철원 노동당사가 위치한 철원지역은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북진 작전으로 북한으로부터 수복한 지역이다.
『철원군지』1760-1766쪽에 의하면, 노동당사는 1946년 지역주민들의 강제
동원과 모금운동으로 지어진 지상3층 건물로 중앙당 지령의 극비사업과
주민 동향 사찰 등을 실시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건물이 남아있다.
['두근두근' 조형물]
사진이 없어서 지난번 친구들 다녀온 "철원 노동청사" 사진을 올렸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당신과 내가 있습니다.
백마고지전적지
백마고지전적지
강원 철원군 철원읍 평화로 3591 (철원읍 산명리 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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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군 철원읍 평화로 3591
(지번) 철원읍 산명리 1822-1
1. 개요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제9보병사단이 중공군 38군 소속 3개 사단을
격파한 전투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벌인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전투는 서쪽 화살머리고지 전투 1차전과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2. 전투 전 상황[편집]
1952년 당시 강원도 철원군은 인근의 평강군, 김화군와 함께 철의 삼각지대 중
하나로서 자유와 공산 진영이 틈틈히 충돌하는 지역이었다.
이 와중에 중공군은 이 교착 상황을 타개하고자 점령하기 쉬운 곳을 탐색했고,
그 결과 철원 서쪽의 395고지(백마고지)와 281고지(화살머리고지)를 선정하였다.
당시 유엔군은 철원평야 일대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는데, 철원 북방에 있는
395고지는 남동쪽으로 펼쳐진 철원평야를 훤히 감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즉 395고지 하나만 차지해도 철원 일대의 국군과 유엔군 기지와 보급선을 전부
위협할 수 있었던 것. 남쪽 평야에서 보면 여긴 고지가 맞지만 주변, 특히 북쪽이
해발고도가 1,000 m가 넘는 산들이라 그 산들과 함께 보면 동네 야산 수준이라
감제당할 수밖에 없는 형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펼쳐진 중공군 38군의 공세를 맞이한 세력이 395고지 일대에
주둔한 한국군 9사단이었고, 그렇게 해서 후일 백마고지라 불리는 395고지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3. 전투

백마고지의 지형과 전투 전 9사단 30연대의 방어선 구축
그래도 파상공세가 계속되면 방어하는 측은 당연히 피해와 피로가 누적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중공군은 395고지 정상을 수차례 피탈하는 데 성공했지만, 방어하던 한국군을
이렇게 전투가 계속된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그렇게 계속되던 고지점령전에서 9사단은 휘하 병력을 총동원해 반격, 중공군이 공격의 교두보로 삼았던
4. 결과
백마고지 전투에서 사상자 숫자는 중공군이 1만 4천여 명, 한국군이 3,396명이었다.현리 전투를 비롯해 그동안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실망스러운 졸전을 거듭했던 한국군은


전투 과정[편집]
10월 6일 저녁 중국인민지원군 대장 장융후이는 제38군단 6개 연대의 지원부대병력 등 총병력 4만 4,056명과 각종포 55문의 지원을 받으며, 일제히 봉래호의 제방을 폭파시켜 역곡천을 범람시킴으로써 국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로 인해 제3대대가 증원 병력을 투입하는 데 차질을 빚어 중공군이 395 고지로 맹렬히 돌격했고 제30 보병연대 1대 대장 김영선 소령의 휘하 군대와 3차례나 전투를 치렀으나 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그러나 10월 7일 중공군은 다시 제4차 공세를 감행해 2개 대대로 1대의 전초 기지를 포위해 지속적으로 보병 돌격과 지원 포격을 감행해 395 고지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이주일 대령의 제28보병연대가 투입되어 2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395 고지를 탈환했다.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10월 8일 중공군 제38군 예비 연대를 투입해 제5차 공세를 가해 오전 8시 다시 395 고지 정상을 점령했으나 최창용 중령의 제28보병연대 제3대대가 반격하여 23시에 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불과 3일 동안 5차례에 걸친 공방전으로 중공군 제38군 113, 114 보병사단의 피해가 심각했으나 제28보병연대는 물론 제30 보병 연대도 재편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할 피해를 입어 김종오 소장은
제29보병연대의 투입을 검토한다.
10월 9일 다시 중공군이 제6차 공세를 펼쳐 제30 보병연대는 전력이 바닥나 3시간 만에 고지 정상과 우측 능성을 내주고 후퇴하지만 김봉철 대령의 제29보병연대가 투입되어 역습을 감행해 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그러자 중공군 제38군 사령부는 제112보병사단의 연대까지 동원해 10월 10일 대규모 인해 전술을 펼치고 제9보병사단의 잔병들도 참호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펼쳤다.
이날 3차례의 함락과 탈환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중공군이 최종적으로 고지를 장악했으나 10월 11일 오전 이대철 소령의 제29보병연대 1대대가 김경진 소령의 2대대 병력을 증원받아 고지를 탈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경진 소령은 전투 과정에서 박격포탄을 맞아 전사했다.
이후에도 전투는 4일 동안 계속되어 10월 15일 새벽 제28보병연대는 기습을 감행해 395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제29보병 연대도 고지 북방의 전초 기지를 탈환해 중공군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전투는 종결되었다
결과 및 영향[편집]
이 10일 동안 12차례의 공방전으로 백마고지는 황폐화되었고 중공군은 1만 명, 국군은 35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제38군은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해 재정비에 착수했고 제9보병사단도 혹심한 손실을 입어 재편성이 필요했다. 또한 이 전투에서 국군은 21만 9954발, 중공군은 5만 5000발, 총 27만 4954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도 강승우 중위, 안영권 하사, 오규봉 하사, 김경진 소령, 이성덕(1929년 1월~1952년 10월) 소위, 김광수 대위 등 많은 인물들도 전사하였다.
전투 기간 동안 미 공군이 주간 669회, 야간 76회의 출격 기록을 세우며 중공군을 폭격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제5공군은 745회 출격했다. 네이팜탄 358발을 포함해 폭탄 2700발을 백마고지에 투하했다.
중공군 제38군은 3개 보병사단 9개 연대 중 7개 연대에 걸쳐 1만 명을 잃게 되었다.
특히 이번 전투에서 잃은 군대가 정예병이라 차후 신병이 보충되더라도 숙련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연천 군남홍수조정지 댐 과 두루미 테마파크
경기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
군남홍수조정지에 만들어진 '두루미 테마파크'를 관람합니다.
전 인류 세계 어디에도 없는 북한이 만든 황강댐과 4월5일댐 4개 등 수공작전
전쟁용 물싸움에 우리도 이런 큰시설을 하여야 하는 현실에... 화가 치미는
마음 달래며, 묵묵히~~ 돌아보며 군남홍수조정지를 관람만 합니다.
북한 황강댐
황강댐은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약 42.3km 떨어진 임진강 본류에 위치한 댐입니다.
2002년 발전과 용수 공급을 위해 착공되었으며, 2007년 전후로 완공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규모는 높이 34m에 길이 880m 정도로, 저수량은 임진강 유역의 또 다른 댐인 4월5일댐
(규모 3,500만t)의 10배에 가까운 3억∼4억t 규모입니다.
2009년 9월 북한이 황강댐 물을 무단방류해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한국수자원공사는 임진강 하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2005년부터 군남댐 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군남댐 공사가 진행중이던 2009년 우리 국민 6명이 북한의 무단 방류로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당초 완공 예정 시기(2012년 12월)를 앞당겨 2011년 완공했다.
군남댐은 3181억 원이 투입된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높이 26m, 길이 658m, 총 저수용량
7160만t 규모다.
<펌>
연천 두루미 테마파크를 늦은시간 다녀가며....
비가 많이오면 늘 걱정이 되는 "군남홍수조정지댐"을 바라만 보고 갑니다
언제나 안보정신 !! 그리고 나라사랑 !!!
원조두지리매운탕 1호점
원조두지리매운탕 1호점
경기 파주시 적성면 술이홀로2316번길 45 (적성면 두지리 89-1)
place.map.kakao.com
경기 파주시 적성면 술이홀로2316번길 45
(지번) 적성면 두지리 89-1
031-958-5377
최북단 청정수역 임진강에 서식하는 참게와 어류를 끓여삶은 두지리매운탕은 식도락가
구미를 사로잡기로 익히 알려졌다.
거슬러 올라 북한의 황강에서 흘러든 파주시 적성면의 임진강 지류는 예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수질에 서식하는 참게와 잡어류 또한 즐비하다.
지역주민과 수도권 관광객의 봄철 입맛을 사로잡는 천하별미, 원조 두지리매운탕은
여타지역과 견줘 모자람이 없는 식감으로 차별화를 기했다.

임진강변 두지리매운탕 맛집에서 민물 새우에 "빠가 참게매운탕" 으로
조금 늦어진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자유로를 달려 부천으로 귀가하며,
긴 시간~~ 강원도 철원 여행에 누님과 매형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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