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3.1운동 순국유적지 제암리 교회
2018년 2월27일 화요일 아침 9시 산음회 친구들과 1박2일로
서해안 첫 봄나들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경기 부천역에서 만나 함께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첫번째로 찾은곳은 경기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제암리 교회를 찾아... 친구들과 순국선열들 묘소를 참배하여
묵념을 드리며... 내일 모래 3.1절 독립운동 만세를 상기하고 갑니다.
언제나 3. 1 절 날은~~!!
꼭 태극기를 달고
3.1 절 노래를 부릅시다.
올해는 3·1 운동이 일어 난지 9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전국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만세운동에 대해 일본군은 전국각지에서 보복하기 시작합니다.
그 보복 중에서 한 마을을 통째로 학살하고 불을 질렀던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해서 사건의 배경과 발발,
이에 따른 증언, 일본 측의 사죄와 오늘날의 ‘화성 제암리 3·1 운동 순국 유적'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암리 학살사건’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화성시의 3·1 운동을 먼저 알아 봐야 합니다.
화성시에서는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날 시위로부터 4월 1일과 2일은 각지에서 봉화시위, 4월 3일에는 면사무소
파괴와 주재소 공격, 순사를 죽이는 등 공격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은 4월 5일부터 화성지역의 만세운동 주모자를 검거하고, 급기야 제암리까지
들이닥치게 됩니다.
1919년 4월 15일 조용했던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 일본군 순사 아리타(有田俊夫) 중위가 들어오면서
‘제암리 학살사건’은 발발을 하게 됩니다.
명목상으로는 발안의 치안을 위해 왔다고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암리에 도착한 아리타 중위는 교회당으로 15세 이상의 남성들을 모이게 한 다음, 미리 만들어 온 명단에
오지 않은 인물들을 찾아 교회당으로 몰아넣고 교회에 못질한 뒤 교회당을 향해 사격 명령, 사격 후에 짚더미와
석유를 끼얹고 교회당에 불을 지른 뒤 남은 마을에도 방화했습니다.
그 후 천도교 일가를 살해하기 위해 옆 마을인 고주리 김흥렬 가족 6명을 총살하고 시체를 유기하는 만행을 벌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
화해와 용서 제암마을 3. 1 정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입니다.
커피와 간식을 간단히 하고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며... 천천히 떠납니다.
오랜만에 찾아본 제암리 교회를
뒤로하고 우리들의 서해안 봄 여행은 계속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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