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논개사당
장수 논개사당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번지에 위치한 논개사당.
"운우회"님들과 '무.진.장.' 2박3일 가을여행중 둘째날 아침 산책길에 찾아봅니다.
http://www.jangsu.go.kr/index.sko?menuCd=NM06004001004
논개사당
호남절의록, 호남삼강록, 의암주논개사적비 등 사실에 근거하여 주논개 생장 고향인 장수 남산에 군민이 하나가 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1956년 함태영 부통령이 친히 쓴 의암사 액자를 걸고, 윤여환 화백이 그린 영정을 모시고 의암사라 했다.
1974년 현 위치로 정화이전하고 1998년 확대 정화했다.
문화재 소개
요약설명
조선시대의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일본군 장수를 껴안고 의롭게 죽은 주논개(1574~1593)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의암사라고도 한다.
진주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제단을 마련해 추모제를 해오다가 영조 16년(1793)부터 나라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렸다.
고종 5년(1868)부터는 3일간의 대규모 추모행사가 진행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 그 후 1954년에 옛 기록등 자료 수집을
통해 초상화를 복원해 봉안하고, 당시 부통령이던 함태영이 직접 쓴 현판을 걸게 되었다.
논개가 태어난 음력 9월 3일에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큰 규모의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논개에 대한 또 다른 시각”
논개는 야담에 기록된 인물이었다. 진주지방을 방문한 유몽인이 논개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책 ‘어유야담’에 담은 것이다.
논개가 죽은 후 207년이 지난 1800년에 발간된 ‘호남절의록’의 기록을 보면 “기생 논개는 장수 사람인데 최경회가 좋아했고 그를 따라
진주로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태상시장록’이라는 공문서에는 논개가 기생이 아닌 최경회의 첩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논개는 기생이 아니라 최경회의 첩이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경회의 묘가 있는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방지마을에는 옛날부터 논개의 묘라고 전해오는 무덤이 있다.
상세설명
임진왜란 때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입으로만 전해 오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되면서 글로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한 『동국신속삼강행』에는 기생의 정열(貞烈)을 표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락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영조 16년(1739)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종 5년(1868)부터 가무와 함께 3일간의 대규모 추모행사를 마련하였다.
일제시대 때 중단되었다가 1954년 당대 일류화가인 김은호가 고증을 통해 논개의 초상화를 그리고 부통령인 함태영 선생이 직접 현판을 쓰면서 남산 공원에 사당을 세웠다.
1973년에는 성역화 작업이 승인되어 장수읍에 2만여 평의 대지를 마련, 사당을 이전하고 담장과 삼문을 세우고 단청까지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지금은 매년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큰 규모의 제례를 올리고 있다.
전날은 타코마 장수촌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에 산책겸 장수 논개사당을 찾아 안개낀 장수시내로 나갑니다.
이번에는 의암공원 충혼 테마숲을
찾아서 정자를 지나 천천히 언덕을 올라 갑니다.
안개속에 산책을 마치고, 타코마 장수촌에 돌아 오기전
장수읍네 맛좋은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아침 식사후 짐을 챙깁니다.
낫설지 않은 "운우회" 회원님의 고향 장수에서
시원하고 맛좋은 장수 막걸리를 정말 많이 많이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