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회' 만남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

마이동 2021. 4. 25. 18:18

 

 

 

 

2021년 3월 25일 목요일 오후, '단전회' 님들과 봄맞이 나들이 1박2일의 마지막으로

"해미순교성지" 를 조용히 탐방하고 갑니다.

 

 

 

 

 

 

 

 

 

 

 

 

 

 

 

 

 

 

 

 

 

 

 

 

해미순교성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지번) 해미면 읍내리 274-10

041-688-3183

 

 

 

 

 

 

 

 

 

1. 성지와 국제성지란?

성지(순례지)는 많은 신자들이 교구 직권자의 승인 아래 특별한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를 뜻합니다. (제 1230조)

교회법전이 말하는 것처럼(제 1231조, 제1232조 참고),
성지의 종류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 교구장이 승인하는 교구 성지
둘째, 주교회의가 승인하는 국가 성지
셋째, 교황청이 승인하는 국제 성지가 그것입니다.

2020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에 ‘해미순교성지’가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 성지'로 선포되었습니다.

 

 

 

2. 이미 선포된 국제 성지는 어디가 있나요?

 

① 역사적 장소(3곳):· 이스라엘(예루살렘)
· 이탈리아(로마)
· 스페인(산티아고)

② 성모 발현지(20곳):· 멕시코(과달루페)
· 포르투칼(파티마)
· 아일랜드(크녹)
· 프랑스(기적의 메달 성당)
· 프랑스(루르드)
· 이탈리아(로레토)
· 폴란드(체스토코바)
· 아르헨티나(성모대성당)
· 프랑스(라 살레트)
· 이탈리아(폼페이)

· 이탈리아(제나차노)
· 일본(아키타)
· 프랑스(퐁맹)
· 이탈리아(시실리)
· 벨기에(보랭)
· 벨기에(바뇌)
· 스페인(필라)
· 바바리아(알토팅)
· 멕시코(오코트란)
· 미국(산타페)

 

 

③ 성인 관련 순례지(5곳):· 이탈리아(카시아, 성 리타)
· 이탈리아(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와 클라라)
· 이탈리아(마테르 도미니, 성 제랄드 마젤라)
· 이탈리아(산 지오반니 로톤도, 성 비오)
· 프랑스(리지외, 성 데레사)


등이 국제성지가 되었고, 2018년 9월 14일 서울대교구의 순례길이 교황청 승인

국제순례지로 선포된 바 있습니다.

 

3. 해미 국제 성지는?

 

이미 선포된 역사적인 장소, 성모 발현지, 유명한 성인 관련 순례지와 비교하여 볼 때 해미성지는 국제 성지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외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유명한 성인이 있거나 특별한 기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이름이나 세례명을 남기고 순교한 132명의 신자가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하층민이어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천여명이 넘는 분으로

추정되는 신앙선조들은 가난했지만, 기쁘게 살다가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묻힌 곳이 해미 무명

순교 성지입니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매장까지 당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이름을 받았을 무명 순교자들을 가톨릭교회가 신앙의 모범으로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전 세계에 알린 영광

스러운 사건이 ‘해미 국제 성지’ 선포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던 무명 순교자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남기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또한 하느님이 가장 기억하실 무명 순교자들을 통해 기도하고, 해미 국제 성지를 순례하며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해미 국제 성지
전담신부 한 광 석 마리요셉 올림

 

 

 

 

 

 

 

 

 

 

 

 

 

 

 

 

 

 

 

 

 

 

 

 

 

 

 

 

 

 

 

 

 

 

 

 

 

 

 

 

 

 

 

 

 

 

 

 

 

 

 

 

 

 

 

 

 

 

 

 

 

 

 

 

 

 

 

 

 

 

 

 

 

 

 

 

 

 

 

 

 

 

 

 

 

 

 

 

 

 

 

 

 

 

 

 

 

 

 

 

 

 

 

 

 

 

 

 

 

 

 

 

 

 

 

 

 

 

 

 

 

 

 

 

 

 

 

 

 

 

 

 

 

 

 

 

 

 

 

 

 

 

 

 

 

 

 

 

 

 

 

 

 

 

 

 

 

 

 

 

 

 

 

 

 

 

 

 

 

 

 

 

 

 

 

 

 

 

 

 

 

 

 

 

 

 

 

 

 

 

 

 

 

 

 

 

 

 

 

 

 

 

 

역사적 배경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 절도사의 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400-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여 지역 통치를하던 곳이다.

내포일원의 해안 국토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할 국토 수비의 전공 기록을 남긴 바 없는 해미 진영은,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오명만을 남기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서, 대박해의 때로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의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 할 때 외에도 해미 진영은 지속적으로 내포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병인 대박해 때에만도 조정에 보고된 해미 진영의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가 1천여 명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그 이전 80여 년 간에 걸친 해미 진영의 지속적인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는 수천명일 것으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속적인 박해 동안에 해미 진영(지금의 해미 읍성)의 두 채의 큰 감옥에는 한티고개를 넘어 내포 지방에 끌려온

천주학 죄인들이 항상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도 바로 이곳에서 옥사하였다.)

이 감옥터에는 당시 손발을 묶이고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리어 고문대로 쓰여지던 호야나무 가지가 지금도

흔적을 지니고 서 있다.

 

그래서 감옥터를 1950년대에 해미 공소 신자들이 식량을 절약하여 1800여 평을 확보하고 공소 강당을 세웠는데, 1982년에 정부가 문화재 관리 정책의 명목으로 공소 강당을 철거하고 그 터를 일부 보상, 일부 징발하고 순교 기념비만 새로 세워주었다. 그 후 오늘 날 그 터의 교회적 성역화 사업이 불허되고 있다.

이렇게 내포에서 끌려와 감옥에 갇혀 있던 그 많은 순교 선열들을 군졸들은 매일같이 해미 진영 서문 밖에 끌어내어

교수,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욱 잔인한 방법이 고안되기도 했다. 돌다리 위에서 죄수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어 죽이기도 하였고 여러 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하였는데, 혹시라도 꿈틀거리는

몸뚱이가 있으면 횃불로 눈알을 지져대기도 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 죄인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은 해미 진영 서문 밖 바로 앞에 있는 칠십평 좁은 순교지에 자리개질해서 죽였던 돌다리가 보존되어 있는데,

1956년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다가 1986년 9월에 원위치로 귀환되었고 바로 그 곁에 1989년에 세운 순교 현양비가 있다. 2009년 1월 8일에 자리개돌 원석은 여숫골 순교자 기념관 맞은편에 옮겨 보존되어 있고 그 터에는

모조품이 자리를 하고 있다.

특히 1866년 병인년으로부터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때에는, 많은 숫자의 죄수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시체 처리의 간편함을 위하여 생매장형이 시행되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십 수 명씩 데리고 나가서, 아무 데나 파기 좋은 곳을 찾아 큰 구덩이를 만들어 한마디

명령으로 산 사람들을 밀어넣어 흙과 자갈로 끌어 묻어버렸다.

또한 생매장형이 시행되면서 여름철 죄인의 수효가 적을 경우에는 사령들이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방법으로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해미 지역 외인들을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부르고 있었으나 현재는 이름조차도 변해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 하는데 이 때 캐어내던 뼈들은 수직으로 서있는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이다.

해미진영 서녘의 생매장 순교 벌판에서는 1935년도(일제 시대) 서산 본당의 범 베드로 신부 지도하에 순교자의 유해

발굴 때 유해 일부와 유품 성물이 발굴되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 9월 20일 유해 발굴터인 원위치로 안장되었고, 순교자의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되어 보존되고 있다.(유해참배실).

그리고 유해 발굴지 인근인 하천 위에 16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 순교탑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순교자중 최근까지 불확실한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신 순교자는 교회측기록 67명 관측기록 65명과 무명순교자로 기록된 47명으로 되어 있으나 그밖에 이름모를 순교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모두가 무명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순교자들 중 홍주(홍성) 및 공주 등 상급 고을로 이송된 순교자들은 이송 사실과

이름들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 보아 그 이송된 순교자들은 해미 진영장의 독자적 처결에 있어서 사후에 문책거리가 됨직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으며, 해미 진영은 처형 후 문책의 배후 세력을 갖지 못한 서민층 신자들만을 심리나 기록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죽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해미 성지는 1985년 4월에 해미 본당이 창설된 후 해미 순교 선열 현양회를 발족하였고 2000년 8월 기공식을

하였으며 2003년 6월 17일 기념 성전을 건립하여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있다. 2014년 8월 1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124위중 해미순교자 세 분 즉, 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후 비오가 시복되었고 그 다음 날 17일에는 이 곳 성지를 방문하시어 시복기념비를 제막, 축복하시었고 곳곳을 순례하셨다.

이렇게 조성된 생매장 순교지 일대는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듣던 곳이 이제는 주민들의 입으로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땅이 되어 오늘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순례자의 자세

 

순례란?

1. 순례는 하느님을 향하여 걸어가는 기도 행위이다.
2. 순례는 세상사를 끊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3. 순례는 죄를 끊고 새 삶을 다짐하는 참회 행위이다.
4. 순례는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명에 순종하는 길이다.
5. 순례는 주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믿음의 길이다.

6. 순례는 약속하신 땅을 찾아가는 이스라엘의 여정이다.
7. 순례는 주님과 함께하는 수난의 십자가의 길이다.
8. 순례는 형제들과 함께가는 사랑의 잔칫길이다.
9. 순례는 선조들을 따르는 순교자적 결단 행위이다.
10. 순례는 하느님 나라를 찾아나선 종말론적 행동이다.

 

 

 

순례지(성지)에서의 몸가짐

1. 주님과 함께 걷는 태도 (기도하는 사람)
2. 참회자로서의 태도 (죄를 씻고 깨끗한 사람)
3. 형제적 사랑의 태도 (순례 중 만난 사람 서로 돕기)
4. 순교선열 공경의 태도 (경건한 행동)
5. 극기와 보속의 태도 (먹고 놀기 위해 오지 않았음)

6. 순례지 성역화의 주역다운 태도
   (잡초 하나라도 뽑고, 쓰레기를 남기지 말고, 시설물을 아낀다.)
7. 결심을 세워 자신을 성화하는 태도
   (자신과 세상을 복음화 할 구체적 결심을 하고 순례지를 떠난다.)

 

 

 

 

순례지침

1. 순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기도하는 태도를 지니자.
2. 순례 중에는 경건한 몸가짐을 하며, 세속적 언행을 하지말자.
3. 순례 전, 후 도중에 참회의 성사에 임하자.
4. 순례 중에는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의 발자취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자.
5. 주님께서 만나자고 약속하신 곳에 찾아왔다고 생각하자.

6. 순례지(성지)는 거룩한 곳이므로, 우리의 기도행위로써 그 곳을 더 거룩한 땅이

되게하자.
7.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정신으로 순례를 하자.
8. 함께 순례하는 형제 자매들과 모든 것을 나누자.
9. 순례 중에는 편한 것만 찾지 말고 주님과 순교자의 수난에 동참하는 정신으로 자신을 억제하자.
10. 각자의 일생이 순례의 길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세상의 불의를 척결하여
정의와 평화 건설의 역군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결심하자.

 

 

 

 

 

 

 

 

 

 

 

 

 

 

 

 

 

 

 

 

 

 

 

 

 

 

 

 

 

 

 

 

 

 

 

 

 

 

 

 

 

 

 

 

 

 

 

 

 

 

 

 

 

 

 

 

 

 

 

 

'단전회' 님들과 봄맞이 나들이로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 를 탐방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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