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5일 목요일 오후, '단전회' 님들과 봄맞이 나들이를 다녀오다
충남 서산 '해미읍성' 을 찾아 탐방합니다,
해미읍성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40-1
041-661-8005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었다.
1416년 태종이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주변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 당시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이설하기 위한 대상지로 정해 1417년(태종17년)부터 1421년(세종3년)까지 충성을 완료하게 된다.
그 후 해미에 충청지역 육군의 최고 지휘기관인 충청병영이 위치하며 병마절도사가 배치되어 육군을 총 지휘하였고 1651년 청주로 충청병영을 이전하며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으로서의 역할이 끝나게 된다.
이후 충청도 5진영중 하나인 호서좌영이 들어서게 되고 영장(營張)으로 무장을 파견해 호서좌영장과 해미현감을 겸직하게 하면서 읍성(邑城)*의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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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講武)
조선시대 왕의 친림하에 거행된 군사훈련을 겸한 수렵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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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邑城) 지방의 관청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 쌓은 성으로 읍(邑)이라는 말은 성으로 둘러 쌓인 마을을 의미한다. 읍성은 평시에는 행정중심지가 되고 비상시에는 방어기지가 된다.
회화나무
일명 호야나무라고 불리며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 172호로 수령 300년 이상 추정되는 나무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해미읍성과 천주교
천주교는 천주를 믿는 종교라는 뜻으로 가톨릭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200여년 전, 조선후기에 전래되어 초기에는 서학이라는 학문의 일종으로 연구되었으나 후에 종교화 되면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1790년대 정조 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병인양요(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탄압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와 1868년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한 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진다.
이때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내포지방 13개 군현의 군사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해당 지역의 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해미읍성에서 처형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1,000여명 이상이었다고 전한다
'단전회' 님들과 봄맞이 나들이 1박2일로 충남 서산 "해미읍성"을 탐방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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